아무튼, 스릴러

🔖 하지만 현실에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현실의 범죄도 없겠지만 범죄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범죄물을 누가 쓰고 누가 읽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기는 낙원에서 범죄물 읽기다. 앞에서 <스노우맨>을 쓴 노르웨이 소설과 요네스뵈를 인터뷰했던 때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의 소설에는 연쇄살인이 자주 등장한다. 강력범죄도 많다. 노르웨이의 현실을 반영했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실은 살인사건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굉장히 안전하다. 소설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히 악의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선의가 실수로 이어지기도 하고, 자기방어가 살인이라는 결과를 맺을 수도 있다. 가해자의 악의뿐 아니라 피해자의 악의가 범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부디 바라건대,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의 삶은 평온하기를. 그리고 이 세상도, 약간은 평온해지기를. 인간들이 서로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아도, 환경오염 덕에 조만간 다 함께 망할 듯하니 더더욱. 어쩐지 결론이 토정비결 점괘같이 되고 말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서로의 안녕을 있는 힘껏 빌어주어도, 일간지 사회면에는 범죄가 넘쳐나리라.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건 뒤에 사람 있어요.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